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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재에서 막부 말의 혼란기로 타임슬립한 뇌외과의 미나가타 진. 자신이 갖고 있던 의료 기구와 기술로 죽을 뻔한 무사를 구해낸 그는, 자신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눈앞의 환자,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구해내고자 노력한다.

  21세기 의료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지만, CT나 MRI는 고사하고 항생 물질이나 엑스레이조차 없는 에도에서 한계에 부딪치면서도 그는,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데...


  타임슬립 닥터 진(원제: JIN -仁-)을 보고 있습니다. 국내 제목 그대로 현대의 의사가 140여 년 전의 막부말 세계로 타임슬립하여 의술을 펼친다는 내용으로, 한편으로 다른 세계 모험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용(龍, Yong)”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무라카미 모토카씨 특유의 사실적인 그림체와 분위기, 그리고 매우 자연스러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데츠카 오사무씨의 ‘블랙잭’에서도 블랙잭이 과거로 넘어가서 치료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내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저는 이따금 중세 같은 시대에는 '비누'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과거로 간 것은 비누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실력의 외과 의사. 세균이니 뭐니 하는 것은 알려지지도 않던 시대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물론 그 세계의 사람들에게 기적이라 할 만한 치료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실제로 이야기가 쉽게 풀려나가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이니까요.

  이 작품의 특징은 140여 년 전의 시대의 현실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인 ‘시간 여행물’은 시대는 달라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은 거의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그래서, 비난받지만) 이 작품 속에 그려진 ‘막부말의 세계’는 정말로 일본 사극 속에 나올 듯한 그런 느낌. 현대와는 완전히 다른 의식을 가진 세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 역시 그렇습니다. 작품 만의 인물인 타치바나 사키를 비롯한 여러 ‘가공의 인물들’, 그리고 사카모토 료우마나 사이고 타카모리 같은 실존 인물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충실하게 느끼게 하지요. 미래에서 찾아온 주인공 진만이 뭔가 다르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날 정도... 그래서 이 이야기가 흥미롭고 눈길을 끄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엄연히 말해서 ‘시간 여행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은 자신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자각은 있지만, 일단 눈앞에 환자가 보이면 무조건 치료하고 봅니다. 그 탓에 어떤 역사가 바뀌는지는 상관없고, 미나가타 진이라는 인물이 본래 있던 곳과는 다른 환경에서 적응해나가는 것에 관점이 맞추어져 있는…. ‘다른 세계 모험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10권 이후에 들어 진이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연출이 있지만, 아직 명확한 것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세계 모험물이 ‘그 세계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가고, 그 세계에 적응하는 모습을 잘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매우 뛰어난 수준입니다. 그 세계의 분위기만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별거 아닌(과거보다 그 위세가 훨씬 약해진) 홍역이나 콜레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상황. 병의 치료 방법은 알지만 항생제나 기타 치료 기구가 없어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충실하게 그려져 나가고 있습니다. (의사 자신도 콜레라로 죽을 뻔 했으니...) 아니, 각기병처럼 예방과 치료 방법은 알고 있음에도 시대적인 현실, 그리고 당 시대 사람의 생활양식이 취향(백미를 너무 좋아하고 현미나 보리 등 기타 곡식을 꺼리는 것) 때문에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모든 상황과 인물들이 살아있는 듯 하지요.

  21세기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의사가 19세기 세계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시대를 펼쳐나가는 이야기...

  주인공인 미나가타 진은 정치적인 인물도 지도자적인 인물도 아닙니다. 그저 묵묵히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고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지극히 모범적인 의사가 되겠지요. 그런 만큼 그의 앞에는 수많은 현실이 막아서고 어려움이 계속됩니다.

  서양의 기술 같은 것을 쓰는 그에 대한 질시, 재정적인 문제, 이따금 음모에 말려들어 위기에 빠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혀 흥미를 더해줍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뛰어난 의술을 가진 그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반대파가 바로 기존의 권위를 지닌 의사들이라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기술은 당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있어 위협의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중에는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고 타협을 모르는 만큼 적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체면을 구기기라도 했다면 증오하기에 이를 정도... (사실, 이런 일은 드문 것이 아닙니다. 실례로 갓 태어난 아기와 산모의 질병이 의사의 더러운 손 때문이니 소독해야 한다고 했던 이는 오랜 기간 ‘정신병자’ 취급을 받다 죽었고, 그 밖에도 이른바 기존의 권위 때문에 새로운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가 많지요.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책을 늦게 낸 것도 '지동설'이라는 것을 주장했다가 교회의 핍박받을게 두려웠다기보다는 기존의 이론과 너무도 다른 나머지 그만큼 인정을 받지 못할게 두려웠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한 경우,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 미나가타 진처럼 100년도 더 앞선 기술을 가진 이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겠지요.)

  게다가, 정치적인 인물이 아닌 만큼 권력에도 돈에도 관심이 없는(더 정확히 말하면 그럴만한 상황도 될 수 없는) 그는 평범한 일개 의사로서 상황에 맞서야 합니다. ‘코네티컷 양키’처럼 국정을 마음대로 좌우하기는 고사하고, 자기 앞가림도 쉽지 않을 정도...

  현대에서 과거로 넘어갔다면, 그만큼 지식이 풍부하고 기술도 대단하겠지만, 그가 가진 지식은 어디까지나 ‘뇌외과의’ 수준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겠군요. 학부생 때의 경험으로(친구가 실험한 내용을 기억해서) 페니실린을 만들기도 하지만, 약물과 관련해서는 때때로 그 시대 사람들의 민간요법에 의존해야 할 정도니까요. 게다가, 현대적인 장비에 의존해왔던 그보다 당 시대 사람이 더 뛰어난 분야도 많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현실적인 제약이 매우 사실적이고 충실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21세기의 뇌외과의라는, 어떤 점에서는 먼치킨 같은(실제로 당시의 의사들에게조차 ‘괴물’이라고 불리는) 그가 살아가는 세계가 사실적이고, 그의 주변, 그리고 그 자신이 매우 충실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미나가타 진의 활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막부 말이라는 세계를 체험하고 그 세계를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여담) 하지만, 이 작품은 SF팬들에게도, 그리고 한편으로 만화팬들에게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막부 말이라는 상황, 게다가 성인 취향의(여기서 성인 취향이란 선정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작품이라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대여점에서는 찾을 수 없고, 있더라도 고작 해야 앞의 몇 권 정도... (반면, 같은 작가분의 ‘용(Yong)’은 거의 모든 대여점에 있더군요.)
  이 작품을 찾기는 어렵지만, SF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로봇이 나오고 우주선이 나오는 것만이 SF는 아니라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