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6.10 만세운동과 6월 민주 항쟁이 시작된 06월 10일. 오늘은 세계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과학 분야...

 

  전자기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앙드레마리 앙페르가 사망했습니다. 전류의 단위인 암페어는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전류가 흐를 때 발생하는 자장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앙페르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지요.
  현대 사회의 수많은 전기기기가 전류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장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아니었다면 현대의(그리고 미래의) 전기 문명이 한참 늦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이 타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식물학자로서보다 브라운 운동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사실 그 이전에도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꽃가루 속 미생물 때문이라 생각하고 무시했지만, 브라운은 정말로 미생물 때문인지 궁금하게 여기고 실험과 연구를 계속하여 이것이 물리현상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리하여 식물학자가 발견한 이 현상이 물리학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궁금한 점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던 브라운은 ‘브라운 운동’을 통해 그 이름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한편 6월 10일엔 생일을 맞이한 일본 만화가가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가가 <초밥왕>으로 유명한 테라사와 다이스케(寺沢大介, 1959년생). <식객>의 허영만씨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데, 1988년 <미스터 맛짱(ミスター味っ子)> 이래 거의 요리 만화만 계속 그리는 작가입니다. 요리를 먹었을 때 맛있다는 표현(일명 리액션)을 매우 독특하게 연출한 것이 눈길을 끕니다.


   그 밖에 극화라는 말을 만들어낸 만화가 타츠미 요시히로(辰巳ヨシヒロ), 80년대 중반 인기를 끈 엽기 개그만화 <ハイスクール!奇面組(하이스쿨 기면조)>의 신자와 모토에(新沢基栄. 1958년생), 청춘연애물에서 서스펜스 호러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오야마다 이쿠(小山田いく, 1959년생), 20대의 젊은 나이에 자살해서 광적인 팬의 인기를 끄는 야마다 하나코(山田花子, 1967년생~1992년 5월 24일), <이프리트~단죄의 불꽃~>을 그린 요시다 마사노리(吉田正紀, 1977년생,) 등이 태어났습니다.
  야마다 하나코는 20대의 나이에 자살하여 숨졌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지금도 열심히 활동 중입니다.

  2010년 6월 10일.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로켓 발사에 실패했습니다. 원인은 아직 미정이지만, 지나치게 서둘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조급한 나머지 실적에만 급급해서 앞서 나가는 듯했지만 결국은 뒤처진 소련과 시간상으로는 조금 뒤지더라도 견실한 성과를 거두며 우주 개발의 승자가 된 미국의 대결을 연상케 합니다.


  실제 달 도착 경쟁 당시 소련의 장비는 금방 고장 나거나 기능이 허술했던 반면, 미국의 장비는 장기간에 걸쳐 충실한 성과를 올렸는데, 이는 2003년 6월 10일 발사한 화성 탐사선 스피릿이 2004년 1월 3일 화성에 무사히 도착한 이래 오랜 기간 건재하게 활동했습니다. 콜롬비아호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고자 그들의 이름을 담고 출발한 스피릿은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부활하여 활동을 계속했는데, 결국 모래에 바퀴가 묻혀 탈출하지 못하고 2011년 5월에 미션을 마치고 맙니다. 그러나 그 혹독한 화성에서 수년에 걸쳐 활동을 계속한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죠. (특히 자매기인 오퍼튜니티는 아직도 활동을 계속 중이니까요.)

 

화성탐사선 스피릿 영면에 들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나로호의 2차 발사 실패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냉전 당시 소련이나 지금의 중국처럼 성과에 급급한 형태가 아니라 보다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좀 더 견실하고 튼튼한 기초를 쌓아나가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SF, 06월 10일...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오늘의 SF, 간략사 >

1836년 06월 10일
  전기역학의 선구자 중 하나인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드레 마리 앙페르(André-Marie Ampère), 사망하다.

1858년 06월 10일
  ‘브라운 운동’으로 알려진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 사망하다.

1865년 06월 10일
  로버트 피어리와의 북극점 도달 논쟁으로 알려진, 미국의 탐험가 프레데릭 쿡(Frederick Albert Cook) 태어나다.

1961년 06월 10일
  일본의 게임 제작자 오카모토 요시키(岡本吉起) 태어나다.

1967년 06월 15일
  6월 5일에 시작된 제3차 중동 전쟁이 막을 내리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4배로 커졌지만,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비난을 받다.
 
1977년 06월 10일
  일본의 만화가 요시다 마사노리(吉田正紀) 태어나다. 대표작 <이프리트~단죄의 불꽃>.

2003년 06월 10일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스피릿(Spirit)을 쏘아 올리다.

2010년 06월 10일
  대한민국의 나로 우주 센터에서 과학 위성을 실은 로켓 나로호를 두 번째로 발사하지만 실패하다.


< 오늘의 SF >

1836년 06월 10일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드레 마리 앙페르(André-Marie Ampère), 사망하다.

  1775년 1월 20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난 앙페르는 지식욕이 왕성하고 특히 수학에 재능을 보여 18세 때 이미 당 시대의 수학 분야의 모든 것을 통달했다고 전해진다. 1793년 리옹이 국민공회의 군대에 점령되고 나서 부친이 단두대형에 처하자, 앙페르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1년 이상 무기력하게 지냈다. 하지만, 어느 날 발견한 식물학 투고 전 논문을 입수하면서 학문에 대한 관심을 되찾은 앙페르는 다채로운 독서를 계속하는 한편, 시의 창작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01년 물리학, 화학 교수를 거쳐 1804년에 리옹에서 수학 교수로 임명된 앙페르는 1809년 파리의 이공계 학교에서 수학 교수직을 맡아 활동하는 동안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820년 덴마크 학자 에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의 실험(전류가 흐르는 전선 주변에서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 내용의 실험)에 대해 알게 된 앙페르는, 이를 기반으로 자성과 전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전류가 흐르는 전선과 자기력의 방향과 관련한 법칙(앙페르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뿐만 아니라 앙페르는 전기가 흐르는 두 전선 사이에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는 현상을 발견하여, 전자기학 기초를 확립하고 이후의 물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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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06월 10일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 사망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식물을 발견하고 분류하여 명명한 브라운은, 1827년. 수정 과정을 연구하고자 물에 띄운 꽃가루 입자를 관찰하던 중, 꽃가루가 파열되어 안에서 나온 미립자가 불규칙적으로 운동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현상은 이전에도 관찰되었지만, 대개는 꽃가루 안의 미생물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브라운은 이를 그대로 넘기지 않고 철저히 연구를 했고, 꽃가루만이 아니라 유리나 금속, 바위 등을 곱게 갈아서 뿌렸을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따라 이 운동은 브라운 운동이라 불리게 되는데, 브라운에 의해 이것이 생물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 드러나면서 많은 물리학자가 이 운동을 연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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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고한 느낌의 식물학자. 하지만, 그는 열린 두뇌의 소유자였다. ] 
 

1865년 06월 10일
  미국의 탐험가 프레데릭 쿡(Frederick Albert Cook) 태어나다.

  1891년 로버트 피어리의 그린란드 첫 탐험에 의사로 참가하고 나서, 별도로 탐험 활동을 진행했다.
  1909년 9월 1일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누가 북극점에 처음 도착했는가를 두고 로버트 피어리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피어리가 최초의 발견자로 인정되었지만, 훗날 피어리가 당시 거액을 들여 증인을 매수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피어리의 북극점 도달 선언이 대중에게 인정받는 가운데, 쿡 자신은 결코 오명을 씻지 못했다. 심지어 텍사스 오일 붐 와중에 사기죄로 감옥에 갇히는 등 갖은 역경을 겪었다. (이러한 일과 관련하여 당시 유명 인사가 된 피어리 집안과 친지들이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설이 있다.)
  1940년 당시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의해 사면된 지 얼마 안 되어 1940년 8월 5일 사망했다.

  누가 진정으로 북극점에 먼저 도달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한때 촉망받던 탐험가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사실은 세계 탐험 역사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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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위의 쿡.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



1961년 06월 10일
  일본의 게임 제작자 오카모토 요시키(岡本吉起) 태어나다.

  일본의 게임 개발자. 코나미의 <타임파일럿>, 캡콤의 <엑제드 엑제스> 등으로 탄막형 슈팅을 낳은 원조가 되었고 많은 작품에서 활약했다.

 

관련 링크 : 오카모토 요시키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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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6월 15일
  6월 5일에 시작된 제3차 중동 전쟁, 일명 6일 전쟁이 막을 내리다.

  아랍 세력의 결속에 위기를 느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6월 5일 맹폭격으로 이집트 전투기 300대를 파괴하고, 다음 날에는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의 전투기를 포함 총 416대의 항공기를 파괴하여 개전 초기 아랍 측의 공군력을 괴멸시킨 이스라엘군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종결되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시리아 국경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고 결국 요르단이 지키고 있던 예루살렘 동쪽 지역을 포함하여 전쟁 전보다 4배의 영토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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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전쟁 후의 이스라엘 영토. 이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다. ]

  사실 이 전쟁은 냉전 기간 중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본래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이집트 역시 처음부터 참전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KGB로부터 이스라엘이 공격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받은 시리아는 이집트와 공동 방위 조약을 맺어 이에 대비했다.


  초조해진 이스라엘은 미국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베트남전에 몰두하던 미국은 이를 사실상 무시했고, 당시 시나이 반도에서 정전 감시를 맡고 있던 국제연합 긴급군(UNEF)이 철수하면서 이스라엘은 위기를 느끼게 되었고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선제공격을 결정했다.
  당시 KGB는 이 정보를 입수했지만, 아랍에 전달하지 않았고, 이 탓에 이스라엘군은 완벽한 기습 공격에 성공하여 아랍 공군을 괴멸시킬 수 있었다. 공군을 잃은 아랍 측은 오래지 않아 정전에 합의하였고 이스라엘은 사실상의 승리와 넓은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그리고 성지 예루살렘을 완벽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여론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격렬하게 비난하여, 국제적인 신용을 잃고, 이때까지 받았던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을 잃고 말았다.

  제3차 중동 전쟁 전까지 이스라엘은 국제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인정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은 사실상 고립 상태에 빠지고 말았으며, 팔레스타인 등에 대한 지지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스라엘은 이후에도 제4차 중동 전쟁에 승리하는 등 그 힘을 보여주었지만, 고립 상태를 벗어날 수는 없었고 그럴수록 힘에 의존하는 태도를 고집하면서 더더욱 자신을 궁지에 몰아갔다.
  비록 현 시점에서 막대한 로비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지지를 얻는 사실이지만, 사실상 침략 전쟁으로 규정된 이 시점에서 시작된 국제적인 고립 상태가 더욱 심해지고, 영토를 빼앗긴 아랍 세계의 반감이 더 심해지면서 이스라엘의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77년 06월 10일
  일본의 만화가 요시다 마사노리(吉田正紀) 태어나다.

  대표작 <이프리트 ~단죄의 불꽃(イフリート〜断罪の炎人〜)>에서 생체 개조로 고온을 내는 초능력자와 냉기를 내는 초능력자를 주역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철도 광으로 철도와 관련된 이름을 캐릭터 명 등에 붙이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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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이프리트 ]



2003년 06월 10일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스피릿(Spirit)을 쏘아 올리다.

  스피릿의 정식 명칭은 마즈 익스플로레이션 로버 A(Mars Exploration Rover A, MER-A)로 바이킹처럼 한 자리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무인 로봇으로 화성 표현을 이동하며 탐사를 진행하는 ‘마즈 익스플로레이션 로버(약칭 마즈 로버)’ 계획의 첫 번째 탐사선을 뜻한다.
  스피릿 탐사선은 2004년 1월 3일 화성의 표면에 무사히 착륙하여 2009년 5월까지 화성 표면을 돌아다녔다. 2009년 5월 스피릿의 바퀴가 모래에 묻혀 움직일 수 없게 된 이후에도 꾸준히 작동하며 정보를 보내왔지만, 결국 2011년 5월 정식으로 임무를 종료하고 말았다. 

  스피릿의 설계 수명은 고작 90 화성일(92지구일) 밖에는 안 되었지만, 이동 능력을 상실하기까지 5년이 넘게 활동했다는 점, 그리고 자매기인 오퍼튜니티는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기적, 아니 수많은 이의 노력이 낳은 성과라 할 것이다. (도착한 기지인 ‘콜롬비아 기념 기지(Colombia Memorial Station)’에서 출발한 이후 총 7,730.48m 거리를 이동했으며, 최초로 화성의 바위를 깎아 내면을 조사하고, 과거에 물이 있었던 증거를 찾아내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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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즈 로버 스피릿. 이 연약한 느낌의 탐사선은 설계 수명의 몇 배나 되는 수명을 이어가며 맹활약했다. ]

  스피릿에는 발사하기 얼마 전(2003년 2월 1일) 콜롬비아 참사로 숨진 승무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부착되어 저 먼 화성에서 그들을 기리고 있다.
  비록 모래에 묻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긴 했지만, 스피릿이 저 먼 화성에서 메모리 문제 등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6년 이상 건재하게 신호를 보내왔던 것은(그리고 두 번째 기체인 오퍼튜니티가 활발하게 화성을 돌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귀환 도중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콜롬비아 승무원들의 비운과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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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의 대지에 남겨진 콜롬비아 승무원들의 이름. 우주로 향했던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  


참고 -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의 활동은 2006년에 아이맥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로빙 마즈(Roving Mars)>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Nasa_mer_marvin.jpg 

[ 스피릿의 패치. 용맹한(?) 모습에서 스피릿의 굳건한 느낌이 전해진다. (c) 워너 브러더즈? ]



2010년 06월 10일
  대한민국의 나로 우주 센터에서 과학 위성을 실은 로켓 나로호를 두 번째로 발사하지만 실패하다.

  전날 소화 장치의 이상 분출로 연기되었던 나로호는 밤샘 작업 끝에 문제를 해결하여 다음 날 발사되었지만, 발사 70초 후 통신이 두절 되고 말았다.
  1단 로켓의 폭발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조급한 발사가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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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호의 발사 장면. 하지만, 우주까지 올리지 못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