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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1일에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장르 작가 박애진님을 만났습니다.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는 여러 팬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저녁식사를 하고 좀더 이야기를 하다 9시 경에 막을 내렸습니다. 거의 5년여 만에 행사를 맡아서 진행하였기에 다소 버벅거리기도 했고, 처음에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느낌도 있었지만, 박애진님, 그리고 여러 참석자분들이 즐겁게 참여해 주셔서 재미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행사에 참여해 주신 박애진님과 여러 참석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행사는 장강명님을 만난 날부터 고작 2주 만에 열려 상당히 급하게 진행된 점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홍보 시간도 짧고 준비도 충분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게다가 박애진님은 웹진 거울을 만들고 시작한 편집장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쓰고 다채로운 활동을 해 오신 분이기에 그만큼 준비도 힘들었죠.
온우주에서 출간된 2권의 단편집과, 기존에 나온 2권의 장편, 여기에 [유, 로봇]을 비롯한 여러 공동단편집(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지만, 그만큼 작가의 다양한 모습과 함께 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행사는 4시 30분에 시작되지만, 3시경 도서관에 도착하여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책상을 모아서 자리를 만들고 작가분과 진행자(바로 관장인 저)의 자리를 배치하고, 작가분과 제가 사용할 도서관 공식 머그컵(6주년 기념)을 놔두었습니다. 지난 번 행사부터 사용했지요.(다른 분들 자리에는 종이컵과 온우주 출판사의 대표님께서 가져오신 커피가 있었습니다. 박애진님께서 머그컵을 보시곤 “야, 신나는데. 특혜 받은 기분이야.”라고 하시더군요.^^)
3시 반 쯤 온우주 대표님께서 오셔서 음료수와 과자를 꺼내셨는데, 과자를 4가지 다른 맛으로 가져오셔서 행사 내내 맛나게 먹었습니다.^^ (근데 사회자가 이렇게 먹기만 해도 되는 거야?-> 마음의 소리)
4시를 조금 넘겼을 때 박애진님께서 도착하셔서 인사를 나누고 4시 30분,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시작되었습니다.
“에... 지금은 2015년... (시계를 보며) 4시 31분...(이런, 카메라를 켜고 자리에 앉느라 1분 경과) 행사를 시작합니다.”
행사는, 너무 오랜 만에 진행하느라 얼떨떨한데다 긴장해 버벅거리는 관장의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도서관 관장 전홍식이고, 작가와의 만남은 편안한 대화의 자리라거나 하는 점들을 이야기 했지요.
우선 제가 여러 가지 질문을 드렸죠. 참 애매모호한 질문이 많았는데, 오랜 만이라 그런지 뭔가 인터뷰처럼 진행되는 느낌도 있었어요. 복잡한 질문이 많았는데 우문현답이라고 박애진님의 대답이 참 충실하고 좋았습니다.
이를테면, ‘박애진님은 작품을 여러 번 꾸준하게 고치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처럼 작품을 고치는 게 어렵지 않은지.’(예를 들어, 온우주 출판사에서 나온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과 “각인”에는 각각 기존의 공동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들어 있는데, 결말이 많이 다릅니다. 일부는 내용이 상당히 길어졌고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아래 답을 하셨습니다.(실제로는 굉장히 길고 복잡한 질문이었습니다.)
“초고를 쓸 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초고를 쓸 때는 정말로 없는 걸 쥐어 짜내서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걸 끝까지 마치는 게 제일 힘들어요. 퇴고가 힘들다는 작가분들이 많지만 저는 한번 완성된 상태를 손보는 거니까 퇴고가 좋아요. 퇴고에 집착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질문이 다소 이어진 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이후 역시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가로서의 활동,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엔 ‘작품 활동을 잘 이어나갈 수 있는 [생활의 지혜]’와 같은 이야기도 있었죠. 이를테면 체력 조절을 위해 이틀에 한번은 산책을 나간다거나, 밤에 잠을 푹 자면서 리셋한다거나, (두뇌 활동을 위한) 당분을 위해 커피를 굉장히 달게 마신다거나……. 그리고...
박애진님만의 레시피 대공개!
“글은 논리적이어야 해서 술을 마시고 쓸 수 없지만, 취미로 하는 그림은 술을 마시고 그려도 괜찮더라고요. 싸구려 화이트 화인이 그림 그리면서 마시기엔 좋아요. 안주가 없어도 되니까. 요즘엔 소주와 탄산수와 사이다를 2대1.5대1.5로 섞어 마십니다.”재료 : 소주, 탄산수, 사이다도구 : 소주잔방법 :1. 소주잔으로 소주를 2잔, 탄산수 1.5잔, 사이다 1.5잔 섞는다.2. 맛있게 마신다.
이야기 대부분은 작가 활동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특히 장편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장편인 “부엉이 소녀 욜란드”와 “지우전”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 박애진님의 장편, 부엉이 소녀 욜란드와 지우전. 속편도 생각 중이시라 합니다. ]
작가 분께서 하나의 성장을 이루셨다고 하는 장편 “지우전.” 사실 저도 꽤 재미있게 본 작품이었는데, 사실은 이보다 뒤에 나온 “부엉이 소녀 욜란드”를 쓴 뒤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부엉이 소녀 욜란드”는 이제까지 자신이 써왔던 글의 연장선에서, 고양이나 부엉이, 소녀 주인공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을 담아 넣은(다만, 평소엔 쓰지 않던 결혼식 등의 장면을 ‘오글거리는 걸 참으며(^^)’ 쓰느라 힘들었다곤 합니다만) 작품이지만, “지우전”은 이제까지 많이 쓰지 않았던 ‘남자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시대물을 쓰는 등 해 보지 않았던 시도를 하면서 ‘영감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는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한편, ‘지우전’은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셨다는 얘기를) 매우 진지하게 해 주셨는데, 많은 이가 좋아하는 글을 완성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잘 느껴졌습니다.
최근에는 장장 4년여에 걸쳐서 –이제까지 해 보지 않았던- 피바람이 몰아치는 검과 영웅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이고, 영웅물이라는 게 ‘작가왈’ 오글거리는 부분도 많고, 워낙 오래 쓰다 보니 때로 앞이 기억나지 않아서 힘든 점 등이 있지만, 그만큼 즐겁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올해 안에는 완성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현재 예상 분량은 거의 10권에 가까운 만큼 나오는 게 기대되면서도 과연 출판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점도 있었지요.
한편, 행사에 앞서서 참가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 “작가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초콜릿에 있는 뭔가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러자 한 분이 ‘칼로리’라고 대답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나중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엔도르핀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는 바로 그 순간에 나오는 호르몬이 초콜릿에 있다는 기분을 좋게 하는 성분보다 10배쯤 센 거 같아요. 글을 쓰다 보면 완전히 몰입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이 주는 희열이 정말 중독성이 있는 거 같아요. 역시 가장 좋을 때는 초고 마지막 문장을 딱 쓸 때의 희열이죠. 장편이 단편보다 마지막 문장을 쓸 때의 희열이 더 크더라고요. 아무래도 오래 걸리다 보니 그런가봐요.”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자뻑을 할 필요가 있다.”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특히 장편은 어느 순간 이 글이 과연 재미있는지, 제대로 쓰고 있는지 회의가 드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면 항상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말씀이었죠.
“무조건 끝을 내야 해요. 이거 괜히 썼나 싶은 마음이 들어 후회하거나 엎어버리고 싶을 때, 이야기가 잘 안 풀리고 막히는 큰 산을 만났을 때도 어떻게든 끝까지 파서 마지막 문장을 써야 해요. (막혔을 때 끝까지 파서 돌파하는) 그런 경험을 해 봐야 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다는 경험을 몸에 새기는 거죠.”
공동단편선에서부터 2권의 장편, 여기에 단편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완성해온, 그야말로 어릴 때부터 글을 끄적였고 하이텔 동호회를 거쳐 거울 초대 편집장으로 지금은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는 생활 속에 다채로운 작품을 완성한 박애진님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느껴졌습니다.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작품이 막혔을 때 그것을 돌파하는 노력, 여기에 문장을 마무리 할 때의 희열에 대한 말씀이 인상적인 대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장편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 글에선 –트와일라잇 정도는 무리라도- 로맨스의 비율을 높여 “오글거리는 삼각관계 이야기도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도 하시면서 “지우전”이나 “부엉이 소녀 욜란드”의 속편이나 “본격적인 SF에 대한 도전”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한편으로, “지금 쓰는 장편이 벌써 4년째에 들어섰는데, 이 속도면 평생 장편 10편 밖에 못 쓸 수도 있어서 무섭다. 글을 많이 쓰려면 오래 살도록 건강 관리도 잘 하고 글 쓰는 속도도 높여야 겠다.”라고 말씀하신 만큼, 이번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의 계속되는 활동에서 보여주실 박애진님의 ‘글에 대한 정면 도전’을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의 질문으로 박애진님께서 추천하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합니다.(신뢰성(^^)을 높이고자 박애진님의 녹취 그대로 소개.)
“곽재식님 작품은 웬만하면 누구나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요?”
“어둡고 꿀꿀한 거 보고 싶으시면 역시 정도경(정보라)님. 묘하게 어두운데 묘하게 생명력이 있어요. 굉장히 좋아합니다.”
“투쟁에 관심 있으시면, 이서영님 단편도 재미있고.”
“김이환님글 좋아합니다. 김이환님은 써온 글이 많은 만큼, 오랫동안 글을 보아왔어요. 한 작가의 작품을 계속 보면 패턴이 보이는데 김이환 작가님은 중간중간 그 패턴을 깨면서 가는 게 좋고. 글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 좋아합니다.”
- 외국 작품으로는 “노인의 전쟁”이나 “견인 도시 연대기”가 장르를 많이 안 봐온 분들도 몰입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 같아요. “테메레르”도 재미있게 봤고, “얼음과 불의 노래”도 좋아하는데, 3부 이후 장편 쓰느라 못 봐서 아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