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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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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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터가 여름방학, 타임슬립, 보이밋걸, 기억 소멸까지, 제 눈물샘과 직결되는 것들이여서 기대가 아주 컸는데, 또 한편으로는 '감성팔이'용으로 딱 좋은 소재들이라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렇게 감정을 극한으로 끄집어내려는 전개는 아니더군요. 적절한 선에서 감정 조절을 잘 해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소재들에서 예상되는 뻔한 전개를 어떻게 잘 피해가더군요. 이를테면 남자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며 죽은 아버지의 말("어릴 때 이곳에 와서 반딧불을 본 적이 있지.")을 떠올릴 때, 여기서 남자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게 저뿐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죽은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웅변하며, "그래도 아이들은 현실을 살아간다. 그리고 미래로"라는 다소 구태의연한 주제를 정말로 절실하게 풀어냅니다.
작화도 약간 어설프다고 느낀 분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담백하게 느껴졌고요. 나중에 반딧불이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며 날아가는 장면 같은 걸 보면 의도적으로 그런 작화를 쓴 것 같기도 하군요. 어쨌든 이를 상쇄시킬 만큼 연출도 좋고 캐릭터도 좋고, 뭣보다 이야기 전개가 좋았기에 큰 단점처럼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여러가지 상징들을 적절하게 썼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10일~15일 내외로 죽는 반딧불, 곧 수몰될 마을, 불꽂놀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이들, 마지막 여름방학 같은 '소멸의 이미지'들이 이야기와 직결되며 자연스레 감동을 끌어냈습니다. 전 주인공이 다시 현재로 돌아가며 이별하는 장면에서 끝냈어도 좋았을 것 같아서, 오히려 나중에 재회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부분이 약간 사족처럼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소년과 소녀의 사랑에 그리 큰 무게를 두고 감상하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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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쨌든 개봉하면 다시 한 번 보러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제가 유독 이런 소재에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얼마 전에 본 늑대아이보다 더 감동적이었네요. 전 남들이 다 늑대아이 스텝롤 올라갈 때 눈물이 났다고 야단법석(?)들인데도, 솔직히 늑대아이에서 울컥한 장면은 없었거든요. 오히려 이 작품을 보면서 눈물이 찔끔나더군요.(물론 늑대아이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