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오래 전부터 자국의 문화나 전통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지만, 그 중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중문화'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이 아닐까?

  속칭 재패니메이션이라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본 내에서 매년 수백, 수천종이 쏟아져 나오며 영화보다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역시 년간 수천, 수만 종이 쏟아져 나오는 게임은 일본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닌텐도 DS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와 더불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대중문화(만화, 애니, 게임)의 이면에는 물론 다양한 만화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그리고 게임 제작자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일본을 벗어나 세계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멀티플 제작자'들. 그리고 그들 중에 역시 세계를 무대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스타 작가가 있으니...

재패니메이션 성공 전설,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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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야마 아키라라는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의 대표작을 모르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1984년부터 1995년까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하고, 1986년부터 1997년까지 TV (그리고 동시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 작품 <드래곤볼(Dragon Ball)>은 장기간에 걸쳐 잡지의 인기 1위를 고수하며 90년대 점프 황금 시대를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했으며, 일본 내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 수십 개 나라에 선보이며 ‘재패니메이션’의 국제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소년 점프의 600만부 쾌거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파격적인 파워가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 당시 편집장 니시무라 시게오)

  일본 내에서만 2억 부 가까이 판매하여 사실상 판매율 1위를 자랑하는 이 작품 덕분에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는 일본 내에서도 손꼽는 갑부가 되었고, 2000년에는 수청 소득 8억 엔(약 80억 원)에 가까운 소득으로 전국에서도 76위에 이르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는 때때로 단편 등 짧은 작품만을 그리고 있지만, 기존 작품의 저작권만으로도 수입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드래곤퀘스트 8편. 영화풍의 파이널 판타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매우 자연스럽다.
[ 드래곤퀘스트 8편. 영화풍의 파이널 판타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매우 자연스럽다. ]

  게다가, 그가 디자인을 맡은 게임 <드래곤 퀘스트(Dragon Quest)>는 1편 이래 시리즈를 모두 합쳐 4,600만 개가 판매되었고, 트레이딩 카드를 필두로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쏟아내며 인기를 끌고 있다.

  <드래곤볼>의 연재가 끝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연재와 방송이 계속되고 있으며, 당시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애니메이션은 2008년 현재도 ‘지금까지 가장 재미있었던 애니메이션’의 종합 1위(남녀 모두 1위)를 기록하며 그 인기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으며,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의 만화 부분에서 3위를 기록하는 등 예술적인 가치조차 인정받았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선보인 블루 드래곤. 물론, 토리야마씨의 깔끔한 그림체가 돋보인다.
[ 애니메이션으로도 선보인 블루 드래곤. 물론, 토리야마씨의 깔끔한 그림체가 돋보인다.]

  만화가/원화가로서 그의 실력은 화<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라이벌인 <파이널 판타지>를 낳은 사카구치 히로노부(坂口博信)씨가 자신의 게임 <블루 드래곤(BLUE DRAGON)>의 원화가로 초빙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으며, 실제로 일본 내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린 만화가’로 선출되기도 했다.

고난의 데뷔 시절
  앞서 살펴보았듯, 토리야마 아키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만화가라 부를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것은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 정도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는 실제로 생산되어 판매하고 있다.
[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는 실제로 생산되어 판매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로 과장된 연출이 눈에 띄는 일본 만화계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인정받는 만화가. ‘재패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그 누구 할 것 없이 이 사람을 뽑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가난한 가정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만화 그리기에 열중했던 그의 만화 생활은 그다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저녁밥을 먹을 밥이 없어 대신 왈츠(?)를 추곤 했다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그는, 오직 그림 그리는 일을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으로 삼아 노력했지만, 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 생활은 그의 취미에 맞지 않아 금방 퇴직했고, 결국 어려운 생활 속에 상금에 관심을 갖고(눈이 멀어) ‘주간 소년 매거진’의 신인상에 응모하려 했지만 마감에 맞추지 못하여 포기. 결국 조금이라도 돈이 되길 바라며 ‘주간 소년 점프’의 문을 두드렸다.

  이제까지 이 코너에서 소개한 ‘타카하시 루미코’ 등 만화가들이 모두 신인상을 거쳐 데뷔한 것과는 달리 당시의 그는 ‘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을 뿐만 아니라, ‘데뷔’조차 쉽지 않았다.

[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POLA&ROID /> 이렇게 그는 처음부터 미국 스타일을 모방하곤 했다. ]
[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POLA&ROID> 이렇게 그는 처음부터 미국 스타일을 모방하곤 했다. ]

  SF, 특히 외국의 SF를 좋아해서 <스타워즈>의 패러디 같은 작품을 그리고, 효과음조차 일본어가 아닌 알파벳으로 그리곤 했던 그의 작품은 당시 일본 독자들에게 그다지 명쾌하게 다가오지 못했고, 한마디로 재미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서 남다른 감각을 느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당시 점프 편집자 중 하나였던 닥터 마시리트(아니, 토리시마 카즈히코)였다.

<닥터 슬럼프 />의 악의 과학자 마시리트. 바로 토리시마씨를 모델로 하고 있다.
[ <닥터 슬럼프>의 악의 과학자 마시리트. 바로 토리시마씨를 모델로 하고 있다. ]

<타이의 대모험 />에서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포프의 스승으로 등장한 마시리트. 괴짜 같지만 엄격하면서 유능한 스승으로 등장하는 그 역시 토리시마씨를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 <타이의 대모험>에서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포프의 스승으로 등장한 마시리트. 괴짜 같지만 엄격하면서 유능한 스승으로 등장하는 그 역시 토리시마씨를 모델로 한 캐릭터이다. ]

  평범한 필자에 지나지 않았던 호리이 유지를 게임 업계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전영소녀>의 카츠라 마사카즈 등 작가들을 발굴, 육성하고 <유희왕> 등의 미디어 믹스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화와 관련된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그는, 귀신 편집자라는 별명 그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걸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재능’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밑에서 활동한 많은 작가들이 그를 패러디한 캐릭터를 선보인 것으로 잘 알려진 토리시마씨는, <드래곤볼>을 시작으로 현재(<원피스>, <나루토> 등)에 이르는 점프의 성공 신화를 낳은 주역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그의 활약으로 주간 소년 점프는 소년지 인기 1위를 획득했
을 뿐만 아니라 애니, 게임 등 미디어 믹스에서도 꾸준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런 업적으로 그는 현재 슈에이사의 이사를 맡고 있다. 편집자 시절의 그와 관련하여 수많은 전설이 있는데, 최근 오바타 타케시시의 만화 <바쿠만>에서 소개된 '원고를 제단기에 넣어버린 편집자 얘기'가 바로 그와 토리야마의 이야기이다.)

데뷔작 원더아일랜드. 뭔가 복잡하고 어수선한 작품으로 인기도 최악이었다.
[ 데뷔작 원더아일랜드. 뭔가 복잡하고 어수선한 작품으로 인기도 최악이었다. ]

  러브 코미디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엄격하면서도 적절한 조언으로 잘 알려진 그는 토리야마에게 “지금은 부족하지만 노력하면 뭔가 될 것이다.”라며 격려를 계속하였고, 그에 호응하듯 토리야마 역시 그 밑에서 계속 수행하며 결국 1978년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데뷔 전까지 토리야마 아키라가 토리시마로부터 ‘퇴짜’ 맞은 원고는 1년간 500페이지에 달하는데, 이는 그의 끈기와 노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일단 인정한 작가는 끝까지 밀어주는(수십 편의 원고를 퇴짜 놓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토리시마의 스타일을 입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 조종사가 이상한 섬에서 겪는 일을 담은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불가사의’하고 황당한 내용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의문사)를 토해내게 했고 결국 ‘인기 최하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작품에 이어 <원더 아일랜드 2> 등이 수록되긴 했지만 역시 인기는 별로… 데뷔를 했다곤 하지만, 1년 간 500페이지 가까운 ‘퇴짜’가 계속되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그리던 그에게 토리시마가 조언을 했으니 바로 ‘주인공을 여자’로 하자는 것이었다.

토리야마 최초의 인기(?)작, <소녀 형사 토마토 />
[ 토리야마 최초의 인기(?)작, <소녀 형사 토마토> ] 

  그것은 그때까지 아저씨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렸던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있어 파격적인 의견이었지만, 그 결과 탄생한 <소녀 형사 토마토>가 그나마 인기를 끌면서 그에게 ‘연재’라는